홈 > 벳톡이야기 > 벳톡연재
벳톡연재


국가 유공자의 카지노행

겜블러90 1 413

남상국씨(73.가명)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 자체다.
서울 중앙고등학교 2학년때 6.25가 발발하자 자원 입대해 전투과정에서 총상을 입었다.
대퇴부 관통으로 병원치료를 2년 이상 받고 군으로 복귀했다가 배움에 대한 열망을 감출 수 없어 전역을 결심했다.
1962년 육군 대위로 예편한 남씨는 곧장 외국어대 일어일문학과에 입학해 일본과 일본 문화에 심취했다.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통역과 관광가이드로 12년을 바쁘게 지내다보니 남씨는 결혼할 시간조차 없었다.
사업을 결심하고 한국으로 귀국한 남씨는 일본에서 번 돈을 자본 삼아 군납사업에 대한 노하우를 배운 뒤 베트남과 태국과 중국 등 동남아는 물론 이란과 이집트에 드나들며 국제적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군납사업도 든든한 배경이 부족하고 운이 따라주지 않은 데다가 고국에 대한 향수가 겹쳐 10년 만에 고된 외국생활을 접고 98년 다시 귀국했다.
그리운 고국을 찾아 고향인 서울에 왔지만 반겨주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도 없는 혈혈단신 그 자체였다.
나이도 많고 빈털터리가 된 상황에 오랜 외국생활로 환경 적응도 그렇고 막노동할 능력도 안되어 거렁뱅이 같은 생황을 하다가 99년부터는 노숙자로 지하철역을 전전했다.

남씨는 6.25때 다친 다리와 허리로 인해 거동이 불편하자 전상자로 처리해 달라고 청와대에 청원한 결과 다행히 2001년 초 정부로부터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한 달에 국가에서 나오는 연금이 30만원 수준에 불과해 노숙자 생활을 청산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워낙 알뜰한 남씨는 노숙자를 하며 구걸한 돈, 국가에서 받은 연금 등을 은행에 저축하면서 2002년 여름 3,000만원이 넘는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지하철 노숙자에게도 강원랜드카지노의 열풍소식이 몰아쳤고 남씨는 호기심이 들었다.
국가유공자 신분증으로 공짜 열차를 타고 카지노에 입장해 게임을 하는데 재미와 스릴이 넘쳤다.
몸이 불편한 탓에 목발을 짚기도 하고 열차로 다니기가 힘이 들자 남씨는 고한에 월세방을 얻어 카지노에 매일처럼 출근하기도 했다.
게임머니가 적어 처음에는 1만원씩 베팅하던 남씨는 바카라와 블랙잭에서 5,000원으로 베팅한도를 낮췄지만 2년여만에 3,000만원을 날렸다.(생활비 포함)
남씨는 강원랜드에서 가장 적은 돈을 날린 사례였다.
카지노에 입장할 때는 휠체어를 타고 국가유공자 증서를 코팅해 목에 걸고 황혼을 카지노 게임으로 즐기던 남씨는 노숙자 시절 가운데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
열차와 버스는 물론 고궁에서도 국가유공자에게는 공짜인데 카지노 입장료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항의하던 남씨는 2005년 여름부터 카지노에서 영 볼 수가 없게 됐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 Comments
dfdsf  
빙고
제목